또 다른 나
전혀 없어 포기한 채 그 자리에
서서 질긴 바람의 유혹만을
어설픈 표정으로 받고 있다
막다른 골목길에서 빠져나가려고
아무리 아등바등 발버둥쳐도
나를 잡아줄 유정이란 것은
이토록 잔인하게
어두컴컴한 곳이 또 있으랴
나뒹구는 낙엽조차 한 잎 없구나
소주냄새 풀풀 풍기며 나와 정사를
나누자고 볼과 귓불을 곰살궂게
애무하며 거듭 조르고 있다
불행인지, 다행스러운 일인지
막다른 골목에 바람은 부는구나
흐느적거리며 불어오는 바람
좁디좁은 막다른 골목길
불빛마저 상실되어 벽과
어둠의 벽 사이에 갇혀 저항조차
하지 못한 채 홀로 서 있다